[웨딩에세이] 결혼은 마감 임박 여행 상품
에세이rss 퍼머링크http://www.wefnews.co.kr/vlink/87484복사기사입력 2013-10-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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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마감 임박 여행 상품


꿈에 그리던 휴양지로 떠날 수 있는 올 여름 마지막 세일 상품이 텔레비전 화면에 15분째 나오고 있다. 꽤 그럴싸한 특급 호텔과 눈부실 정도로 푸른 바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모래 해변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옵션도 없고 자유일정이란다.

게다가 가격까지 할부라니. 싸구려 기념품점에 내려주는 가이드도 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대박 상품’이라는 쇼핑호스트의 이야기가 귀에 쏙 박힌다. 휴가도 못 갔겠다, 가격대비 상품도 훌륭해 보인다. 다시 오지 않을 빅 찬스라며 게스트가 한마디 거들자마음이 흔들린다.

 

 
 
친구에게 전화하니 일단 한번 가보란다. 상품도 괜찮아 보이고, 나이가 더 들면 가고 싶어도 못 갈 거라고, 지금이 좋은 시기라며 등을 떠민다. 기대반 걱정반, 그리고 새로운 여행에 대한 설렘을 갖고 나는 6개월 할부로 여행 상품을 결제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나는 혼자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고, 표를 확인하고, 응급약을 챙기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지 리스트를 정했다.

그런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얇은 모포 하나를 더 챙겨라.”, “긴 옷도 가져가라.”, “밤에 나다니지 마라.”, “무슨 일 있으면 집에 바로 전화해라.” 등 한마디씩을 거들었지만 나는 이 지루함과 설렘뒤에 찾아올 나만의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여행을 시작했다.

멀리 돌아온 여행이었지만 그나마 아는 사람과 한방을 쓰니, 낯선 여행지에서 의외로움은 덜했다. 어떤 여행이 될지는 이 룸메이트와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달렸다. 갑자기 생긴 룸메이트 때문에 기쁘기도 했지만 그만큼 성가신 일도 생긴 것 같아 심경이 복잡해졌다.

신기하게 이곳으로 여행을 와서는 내 못된 습관들이 자취를 감춘다. 쉬 짜증내던 모습은 사라지고 화장실에 꽂혀 있는 히비스쿠스 한 송이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방 청소도 자주하게 되고, 룸메이트가 벗어놓은 양말을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도 닦는 척을 한다.

‘1년 전에는 서로 알지도 못했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내가 살아온 인생만큼, 그 사람의 시간도 길었음을 이해해 본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한 여행이다. 멋진 추억,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로 잘해보자 의기투합하기에도 시간은 짧다.

물론 여행상품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싸우거나 환불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 집어치우고 집에 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창문 너머의 보름달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여행 끝이 후회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사소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추억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매 순간 뜨겁게 즐기지 못하면 아쉬웠다는 후회가 생길 수 있는 것처럼 결혼생활 역시 인생의 여행 중 하나다.

이왕 떠날 여행이라면, 후회없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여행이 평생 다시는 오지 못할 것처럼 말이다.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빅 찬스’라 떠들던 쇼핑호스트의 말이 대부분 허풍이라는 것을 알면서 샀던 ‘대박상품’이니까 말이다.


서른다섯,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 파리로 떠났던 한정선 포토그래퍼의 낭만 여행기《한 잔의 쇼콜라 쇼에 파리를 담다》.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만났던 아기자기한 쇼콜라 쇼 숍과 솔직담백한 내면 이야기를 통해 달콤하고 부드러운 파리의 일상을 느끼게 해준다.


writer 한정선

포토그래퍼이자 결혼 1년 차 새내기 신부. 저서로는《한 잔의 쇼콜라 쇼에 파리를 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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